당일 공무원 사망 첩보 입수하고도 늑장 발표
남북관계 악영향 우려 '정무적 판단' 작용한 듯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47)씨 사건 대응을 위해 23일 새벽 열렸던 청와대 관계 장관회의에서 "북측에 사망 첩보 신뢰성을 확인한 뒤 발표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던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정부가 A씨 사망 첩보를 입수한 뒤 37시간이 지나서야 늑장 발표했던 것은 북측 입장을 알아보느라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했다는 입장이지만 남북 관계 파장과 북한 입장을 의식한 정무적 판단이 개입됐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를 즉각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에 물어본 뒤 발표하려 했다가 혼선만 가중시킨 꼴이어서 부실 대응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28일 정부소식통에 따르면 23일 오전 1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모인 관계장관회의에서 A씨 사망 첩보 신뢰성과 함께 발표 시점 등에 대한 의견 조율도 이뤄졌다. 군과 정보 당국이 입수한 감청정보(시긴트ㆍSIGINT) 등 각종 첩보를 종합할 때 A씨 사망에 무게가 실렸으나 첩보의 정확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회의 참석자들은 "(신빙성이 부족한 부분은) 우선 북측에 확인을 해보고, 북한의 반응이 없으면 그 때 우리가 분석한 정보로 발표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의에선 북측의 입장을 확인할 방법으로 두 가지가 제시됐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채널을 통한 통지문 교환 △언론 보도를 통한 북한 반응 끌어 내기였다. 실제 국방부는 23일 오후 유엔사 채널을 통해 실종자 A씨에 대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달라는 전통문을 보냈고 언론에 문자 공지를 통해 A씨의 실종 사실만 공개했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이때부터 꼬였다. 국방부는 23일 오후 1시30분 출입기자단에 A씨 실종 사실을 처음 전하며 "22일 오후 A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이라고 했을 뿐 사망 첩보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 A씨 월북과 생존 가능성이 거론돼 A씨 사망을 인지했던 정부로선 입장이 난처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A씨가 이미 사망한 것을 알고 있던 정부로선 언론 보도와 여론 흐름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밤 늦게 A씨 사망 사실을 일부 언론에 확인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자 24일에서야 A씨 사망을 공개하며 북측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A씨 사망을 당일 파악하고도 이틀이나 지난 뒤에 이를 공개한 것이어서 갖가지 논란을 자초한 셈이 됐다. 종전 선언 제안이 담긴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의식해 발표를 늦췄다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쏟아졌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사망 사실을 즉각 공개해 북측에 책임부터 묻고 구체적인 사건 경위는 이후에 따져도 됐을 일”이라며 “굳이 A씨 사망을 숨기며 북한에 먼저 물어 보려고 한 의도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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